빙하기와 인류 이동, 우리가 몰랐던 순달랜드·월리스 라인·데니소바인의 이야기

솔직히 저는 빙하기라고 하면 지구 전체가 꽁꽁 얼어붙은 모습을 먼저 떠올렸습니다. 사람도 동물도 추위를 피해 몸을 웅크리고 있었을 것 같았죠. 그런데 이 이야기를 영상으로 접하면서 제가 빙하기를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빙하기에는 지금 우리가 바다라고 알고 있는 곳 상당수가 육지로 드러났습니다. 해수면이 지금보다 훨씬 낮았기 때문입니다. 지도 한 장만 놓고 보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지만, 당시의 지형을 머릿속에 겹쳐 보면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집니다.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사람들이 그 변화한 지형을 따라 실제로 이동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인류가 아시아를 지나 오세아니아와 아메리카까지 퍼져 나간 과정을 따라가다 보니, 인류의 역사가 단순히 한 방향으로 이동한 이야기가 아니라 기후와 지형, 동물의 분포, 그리고 서로 다른 인류 집단의 만남이 복잡하게 얽힌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순달랜드, 사울랜드 그리고 사라진 대륙의 흔적

영상을 보면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순달랜드(Sundaland)와 사울랜드(Sahul)였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호주 원주민의 조상이 수만 년 전에 어떻게 호주까지 이동할 수 있었는지 쉽게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배와 항해 장비가 있었던 것도 아니니까요.

그런데 마지막 빙하기에는 해수면이 현재보다 약 120~130m 낮아졌습니다. 빙상에 엄청난 양의 물이 얼음으로 저장되면서 바다의 수위가 크게 내려갔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현재의 인도네시아와 말레이반도 주변에는 지금보다 훨씬 넓은 육지가 드러났습니다. 이 지역을 순달랜드라고 부릅니다.

호주와 뉴기니 역시 지금과 같은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당시에는 서로 연결된 거대한 육지권을 이루고 있었고, 이를 일반적으로 사훌(Sahul)이라고 부릅니다. 흔히 사울랜드라고도 표현하지만, 고고학이나 지리학 자료에서는 '사훌'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합니다.

여기서 제가 특히 놀랐던 부분은 육지가 모두 연결된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순달랜드에서 사훌로 가려면 당시에도 일부 바다를 건너야 했습니다. 해수면이 크게 낮아졌다고 해도 현재의 인도네시아 동쪽 지역까지 완전히 육지가 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수만 년 전의 인류는 어느 순간 바다를 건너야 했습니다. 정확히 어떤 배를 사용했는지, 어떤 재료로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증거가 제한적이지만, 사람들이 단순히 해안선을 따라 걷기만 한 것이 아니라 상당한 수상 이동 능력을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대나무를 이용한 뗏목과 같은 가설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당시 동남아시아의 환경을 고려하면 식물 재료를 이용한 간단한 부유 장치를 만들었을 가능성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다만 실제로 어떤 형태의 배를 사용했는지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아닙니다. 이 부분은 영상을 볼 때보다 자료를 조금 더 찾아본 뒤 오히려 더 궁금해졌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것이 바로 월리스 라인입니다. 육지가 연결된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차이가 단순한 지도상의 선 하나가 아니라 사람과 동물의 이동 역사를 오랫동안 갈라놓았다는 사실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지금 호주에서 캥거루나 코알라 같은 독특한 동물상을 볼 수 있는 것도 이런 오랜 지리적 고립과 진화의 역사와 연결됩니다. 단순히 '호주에는 특이한 동물이 많다'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관점이었습니다.

월리스 라인, 그리고 300년 만에 풀린 미스터리

이 이야기를 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 가지 질문이 생겼습니다. "그렇다면 왜 어떤 동물들은 가까운 섬으로 넘어가지 못했을까?"였습니다. 지도만 보면 인도네시아의 여러 섬은 서로 가까워 보이는데, 실제 동물의 분포는 놀라울 정도로 뚜렷하게 갈라져 있습니다.

19세기 영국의 자연학자 알프레드 러셀 월리스(Alfred Russel Wallace)는 인도네시아 일대를 조사하면서 이 독특한 차이를 발견했습니다. 아시아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동물들과 오스트레일리아·뉴기니 쪽에서 볼 수 있는 동물들이 특정 지역을 기준으로 뚜렷하게 달라진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월리스 라인(Wallace Line)이라고 부르는 경계가 바로 여기서 나왔습니다. 월리스 라인은 단순한 국경선이나 지질학적 경계가 아니라 동남아시아와 오세아니아 사이에서 동물의 분포가 크게 달라지는 생물지리학적 경계입니다.

저에게 재미있었던 부분은 월리스가 이 현상을 관찰했지만 당시에는 그 원인을 지금처럼 설명할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현상은 눈앞에 보였지만 그것을 만들어낸 지질학적 과정까지는 알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후 판구조론과 과거의 해수면 변화에 대한 연구가 발전하면서 이 경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들이 쌓였습니다. 특히 인도네시아 동쪽 지역에는 오늘날에도 깊은 해역이 남아 있습니다. 빙하기에 해수면이 크게 내려갔더라도 모든 해역이 육지로 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월리스 라인을 단순히 "판과 판이 만나는 곳이라서 생긴 선"이라고만 설명하는 것보다는, 과거의 해수면 변화와 깊은 해협, 지질학적 역사, 오랜 기간의 생물학적 고립이 함께 작용해 만들어진 독특한 생물지리학적 경계라고 이해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영상을 보면서 처음에는 그저 신기한 지리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자료를 조금 찾아보고 나니 하나의 경계선에 기후학, 지질학, 생물학, 인류학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더 재미있었습니다.

과학을 공부하다 보면 이런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먼저 이상한 현상을 발견하고, 한참 뒤에야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월리스가 남긴 관찰 역시 그런 과학의 발전 과정을 보여주는 사례처럼 느껴졌습니다.

데니소바인과 호모사피엔스의 교잡, 그리고 유전자 속에 남은 흔적

제가 이 부분에서 가장 놀랐던 것은 데니소바인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데니소바인은 시베리아의 데니소바 동굴에서 발견된 유골과 치아 등의 DNA 분석을 통해 존재가 확인된 고인류 집단입니다. 눈에 띄는 것은 이들이 단순히 화석 속에만 남아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늘날 일부 아시아와 오세아니아 지역 사람들의 유전체에는 데니소바인과 관련된 유전적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특히 파푸아뉴기니와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을 포함한 일부 오세아니아 인구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비율의 데니소바인 유래 유전자가 확인됩니다.

이 사실은 인류의 이동을 생각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 놓습니다. 예전에는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호모사피엔스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기존의 고인류를 하나씩 밀어내고 새로운 지역을 차지했다고 생각하기 쉬웠습니다. 하지만 유전체 연구는 훨씬 복잡한 그림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호모사피엔스는 이동 과정에서 네안데르탈인이나 데니소바인과 만나 유전자를 주고받았습니다. 즉 인류의 역사는 단순한 '이동과 교체'만이 아니라 '이동과 만남, 그리고 혼합'의 역사이기도 했던 셈입니다.

이 부분을 보고 저는 인류의 이동을 지도에 화살표 하나로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단순화된 그림인지 생각하게 됐습니다. 사람들이 이동하고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때로는 섞이고, 환경에 적응하면서 수천 년과 수만 년의 시간이 흘렀던 것입니다.

고유전체 분석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훨씬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됐습니다. 예전에는 석기나 무덤, 생활 흔적 등을 비교해 사람들이 어디에서 어디로 이동했는지를 추정했다면, 이제는 DNA를 통해 서로 다른 집단 사이의 관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연구 결과를 가지고 특정 현대인의 조상을 하나의 집단으로 단순하게 설명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실제 인류의 이동은 여러 차례의 이주와 혼합이 반복된 복잡한 과정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메리카 원주민과 동아시아인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도 비슷합니다. 인터넷에서는 흔히 "한국인과 아메리카 원주민은 같은 조상에서 왔다"는 식의 단순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지만, 실제 유전체 연구에서는 훨씬 복잡한 인구 이동과 혼합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특히 아메리카 원주민의 조상 집단에는 고대 북유라시아 계통과 동아시아 계통의 유전적 기여가 확인되며, 이후 베링기아를 거쳐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동한 복잡한 과정이 있었던 것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특정 현대 국가나 민족을 하나의 고대 집단과 곧바로 연결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가 될 수 있습니다.

한국인의 기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한반도의 인구 형성은 하나의 집단이 한 번에 내려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동북아시아 여러 지역의 인구 이동과 혼합, 그리고 한반도 내부의 인구 변화가 오랜 시간에 걸쳐 이어진 결과로 보는 것이 적절합니다.

결국 빙하기의 인류 이동을 정리하면 하나의 직선적인 경로보다는 여러 갈래의 이동과 만남이 반복된 네트워크에 가깝습니다.

  1.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호모사피엔스가 아시아로 이동하면서 다른 고인류 집단과 접촉하고 유전적 혼합이 발생했습니다.
  2. 동남아시아를 지나 일부 집단은 순달랜드 지역을 거쳐 바다를 건너 사훌 지역으로 이동했습니다.
  3. 북쪽에서는 빙하기에 드러난 베링기아를 통해 인류 집단이 아메리카로 이동했습니다.
  4. 동북아시아에서도 여러 집단의 이동과 혼합이 반복되면서 오늘날 동아시아 인구의 형성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Nature에 게재된 고유전체 연구 자료 를 찾아보면서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인류의 역사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보는 인류 이동 지도는 이해하기 쉽게 정리된 결과일 뿐, 실제 역사는 여러 집단이 서로 다른 시기에 이동하고 만나고 섞이는 과정의 반복에 가까웠습니다.

스미스소니언 국립자연사박물관의 Human Origins 프로젝트 를 살펴보면 기후 변화가 인류의 이동과 진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함께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보고 나니 빙하기라는 말도 조금 다르게 들립니다. 단순히 추운 시대가 아니라 육지의 모습이 크게 바뀌고, 인간과 동물의 이동 경로까지 바뀌었던 시대였던 것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빙하기에는 해수면이 얼마나 낮아졌나요?

마지막 빙하 최성기에는 전 세계 평균 해수면이 현재보다 약 120~130m 낮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 결과 현재의 얕은 바다였던 대륙붕 지역이 상당 부분 육지로 드러났습니다. 다만 모든 바다가 육지로 변한 것은 아니며, 깊은 해역은 여전히 바다로 남아 있었습니다.

Q. 순달랜드와 사훌은 실제로 하나의 대륙이었나요?

현재의 기준으로 보면 대륙이라기보다는 빙하기에 해수면이 낮아지면서 연결되거나 넓어진 거대한 육지권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순달랜드는 동남아시아 대륙붕 지역의 넓은 육지를 가리키며, 사훌은 당시 연결되어 있던 호주·뉴기니 일대의 육지권을 말합니다.

Q. 월리스 라인은 왜 중요한가요?

월리스 라인은 동남아시아와 오세아니아 사이에서 동물의 분포가 급격하게 달라지는 생물지리학적 경계입니다. 빙하기에도 이 지역의 일부 깊은 바다는 육지로 완전히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랜 기간 생물학적 고립이 유지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Q. 데니소바인은 실제로 호모사피엔스와 섞였나요?

네. 현대 인류의 유전체에서 데니소바인과 관련된 유전적 흔적이 확인되면서 호모사피엔스와 데니소바인 사이에 유전적 교류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특히 오세아니아 일부 인구에서 그 흔적이 상대적으로 많이 나타납니다.

Q. 빙하기에 인류가 이동한 이유는 단순히 추위를 피하기 위해서였나요?

꼭 그렇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기후 변화는 식량과 물, 동물의 이동, 식생과 생활환경을 바꾸었고, 이러한 변화가 여러 시기에 인류의 이동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따라서 인류 이동을 특정한 하나의 이유만으로 설명하기보다는 기후와 자원, 인구 증가,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 등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영상을 보고 가장 오래 생각했던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도가 항상 지금과 같았던 것은 아니다'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지금은 바다인 곳이 수만 년 전에는 사람들이 걸어 다니던 육지였고, 지금은 서로 떨어진 섬들이 당시에는 하나의 거대한 생활권으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 위에서 인류는 먹을 것을 찾아 움직이고, 새로운 환경을 찾아 이동하고, 때로는 바다까지 건넜습니다. 그리고 이동 과정에서 다른 인류 집단을 만나 유전자를 남겼습니다. 결국 오늘날 우리의 유전자에도 그 먼 시대의 이동 흔적이 남아 있는 셈입니다.

월리스 라인을 보면서는 과학이 단순히 정답을 외우는 학문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왜 동물 분포가 이렇게 다르지?'라는 관찰에서 시작했고, 이후 지질학과 기후학, 생물학, 유전체 분석이 발전하면서 조금씩 그 퍼즐을 맞춰갔습니다.

그래서 빙하기의 인류 이동을 찾아보는 일은 단순한 고대사 공부라기보다 지구의 변화와 인간의 적응을 함께 바라보는 과정에 가까웠습니다. 영상을 보기 전에는 그저 오래전 사람들이 이동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자료를 찾아보고 나니 지금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이해하는 데에도 꽤 중요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맨 위로

※ 이 글은 참고영상을 바탕으로 빙하기의 해수면 변화, 순달랜드와 사훌, 월리스 라인, 데니소바인 및 고대 인류의 이동에 대해 추가 자료를 찾아보고 개인적인 생각을 덧붙여 정리한 리뷰입니다. 고대 인류의 이동과 유전적 계통에 관한 연구는 새로운 유전체 자료가 추가되면서 계속 수정·보완되고 있습니다.

리뷰 동영상 출처
YouTube 영상